[安經]당신은 정의를 위해 배신자가 될 수 있나?

 실험이라는 것이 그 종류가 다양하듯이 하루 종일 실험대 옆에서 실험기구를 들고 있어야 하는 한순간도 쉴 수 없는 실험이 있는가 반면, 실제 기구를 다루는 시간은 짧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은 실험이 있다. 요즘 끄적이는 자가 하는 실험이 후자에 속하는 실험이라 비록 주말에 집에서 편히 쉬지 못하고 실험실에 출근은 해야하지만 그래도 정신없이 바쁜 주말은 아니라서 시간과 싸우고자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덕분에 '安經'에 끄적일 거리도 생겼고 말이다.

 끄적이는 자는 폭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지만 예전부터 전쟁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곤 했다. 게다가 비디오 게임도 전쟁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총 쏘는 게임을 즐겨했고 지금도 즐기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만든 영화나 드라마는 즐기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 이유는 소재가 거기서 거기인 우리나라 현실이라서 그럴까? 어쨌든 진짜 군대를 가지 않았다는 점과 더 큰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용감한 사람들에 대한 동경 같은 것들이 끄적이는 자로 하여금 전쟁 영화나 드라마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본 영화는 「킹덤 2 : 사막의 적」이라는 영화로 제목만 봤을 때는 세계 제2차 대전 중 아프리카 전선을 다룬 영화인가 추측했고, 포스터를 봤을 때는 영화 「킹덤」 후속편으로 사우디 아라비아가 배경이 되는가하고 추측했었다. 그러나 이번 「킹덤 2 : 사막의 적」은 「킹덤」하고는 전혀 관계 없는 새로운 작품인 것은 영화를 보고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간단히 어떻게 관계가 없는 지를 살펴보자면 「킹덤」은 지리적 배경은 사우디 아라비아였던 반면, 「킹덤 2 : 사막의 적」은 이라크, 「킹덤」 주인공들은 미국 출신 FBI인 반면, 「킹덤 2 : 사막의 적」은 영국 출신 군인들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감독도 서로 다른 사람이었고...

 어쨌든 「킹덤 2 : 사막의 적」에 대한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주인공은 이라크에 파병된 아직 어린 영국 군인으로 어느 날 한 거리를 순찰하다 무장한 이라크 주민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교전 중에 전투 차량이 포탄에 맞아 주인공이 아닌 다른 어린 병사가 재조차 남지 않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일어난다. 이에 상부에서는 공격한 이라크 주민을 색출하여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우연하게 방에 권총 여러 자루와 망원경을 가진 청년과 제빵사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중년이 용의자로 체포하여 온다.

 상부에서는 용의자 심문은 따로 헌병대에서 하겠다고 호송만 맡기자 이전에도 죽어간 동료들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며 하사를 비롯한 병사들은 이전에 체포해온 이라크 주민들에게 성폭행 등 가혹한 고문을 한다. 파병 기간이 만료되어 다시 영국으로 귀환한 군인들, 그리고 주인공과 동료 군인들은 기쁘게 반겨주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간다. 주인공은 파병 기간동안 기다려준 여자친구에게 이라크에서 있었던 일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그 고문에 대한 사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여자친구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주인공. 그리고 그 하룻밤 상대가 보낸 야한 사진이 문자로 온 것을 확인한 주인공 여자친구는 주인공을 신고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라크 주민을 고문한 사실이 밝혀지고 이와 관련한 모든 군인들이 군법 회의로 넘겨지고, 자신들 신변만 괜찮으면 된다는 상관들에 의해 주인공과 동료 군인이 모든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일단락 짓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주인공 동료 군인은 계속되는 심리적 불안에 의한 환각 증상을 일으키고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주인공 역시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자신들이 죄를 뒤집어 쓰고 사건을 무마시키려고 했으나 동료가 자살한 소식을 듣고 결국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어느 조직이나 구성원간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고, 그 신뢰가 사라지는 순간 조직도 같이 무너지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자기 자신 안녕을 위해서 어쨌든 서로를 끝까지 신뢰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군대와 같이 생명을 담보로 하는 어느 조직보다 무한 신뢰가 필요로 하는 조직이거나 경찰, 검찰과 같이 일반인에 대한 법 집행을 하는 조직이라면 더욱 그것이 심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아무리 옳은 일을 한 것이고, 정의를 구현한 행동일지라도 내부 고발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배신자" 또는 "배반자"로서 낙인이 찍혀 어느 조직에서도 그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사회 역시 겉으로는 정의를 위하여 용기를 낸 사람이라고 칭찬을 할지언정 그가 다시 새로운 조직을 통해 사회로 돌아오는 것을 반기진 않는다. 여타 조직에서 받아들여주지 않는 그를 보호하기는 커녕 내버려두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이며, 거의 방조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는가.

 조직이 추구하는 정의가 참된 정의인지 거짓된 정의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조직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직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거짓된 정의도 참된 정의라고 믿고 행하는 것이고, 거짓된 정의를 거짓된 정의라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조직이 무너지면 본인도 역시 다치게 된다는 것을 모를리가 없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사리사욕을 위해서 조직을 무너뜨린 사람을 "배신자" 또는 "배반자"라고하고 그에 따른 응징을 해야지, 보편적인 참된 정의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조직을 무너뜨린 사람도 그와 똑같이 대우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진짜 "배신자" 또는 "배반자"들은 조직이 무너져서 자신이 입을 피해는 없게끔 만들어 놓고 조직을 무너뜨리고 아무런 죄 없는 구성원들만 피해자를 만드는 반면에, 이번 영화 주인공과 같은 내부 고발자들은 끝까지 조직을 무너뜨리게 되면서 피해를 보는 본인 외에 다른 사람까지 생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정말 참된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라면 이러한 내부 고발자들이 용기를 낸 만큼 다시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각 조직이 참된 정의가 자연스럽게 실현되게끔 유도를 해야한다. 과연 우리나라는 이런 점을 바탕으로 참된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일까? 말로만 "정의 구현 국가"를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끄적이는 자는 이번 영화를 보면서 더욱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by 우비 | 2011/07/02 21:36 | 우비의 安經倉庫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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